첫 만남의 되새김질 – 라마와의 랑데부. Arthur C. Clarke

나의 첫 하드SF. 표지에 끌려 학교 도서관 구석에 있던 책을 집어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생들이 보던 SF도서들이 다 그렇듯, 글보다 많은 그림과 얇디얇은 책들 사이에서 이 책이 뿜고있던 무게감이 지금도 생생하거든요.

https://draco.pe.kr/archives/1047

고려원 미디어에서 출판되었던 책은 7권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번에 읽은 아작출판사에서 복간한 ‘라마와의 랑데부’가 왜 단권으로 나왔는지 처음에는 의아해 했었죠. 하지만 네불러상과 휴고상을 받은 책은 사실 1권에 해당하는 ‘라마와의 랑데부’ 입니다. 고려원 미디어에서 나왔던 책들에서도 1권에만 Arthur C. Clarke라는 이름이 적혀져 있고 나머지 권에는 Arthur C. Clarke, Gentry Lee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왜 직접 집필을 하지 않고 공동작업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라마와의 랑데부를 읽고 나면 생길 수 밖에 없는 라마인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서 당연한 후속작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아서클라크가 기획한 하나의 작품이었던것 처럼 출간된것이 배신감을 들게 했다는것만 빼면요.

Rendezvous with RAMA 비디오게임 표지

라마인의 우주선은 원통형입니다. 행성의 모양을 한 구형, 조타시 이득을 얻기 위한 날개, 추력에 필요한 분사구멍등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구조들은 전부 배제한 깔끔한 원통형입니다. 물론 랑데부가 우주공간에서 이루어지며, 작품내에서 작용반작용이 아닌 다른 어떤 힘으로 추력을 얻었을것이란 가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모양에 대한 생각은 무의미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아서클라크가 우주선 내부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하였고 우주선 내부에 대한 고민을 끝낸 뒤 나오는 ‘결과’가 바로 원형형 우주선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원통형 우주선 내부에 대한 묘사와 사건들이 디테일하기 때문입니다.

그 물체는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50킬로미터 높이의 원기둥이었으며 회전하는 선반같은 모습이었다. 양 끝은 20킬로미터 지름의 평면이고 그중 한쪽에는 구조물 같은 것이 있었다. 먼 거리에서 크기의 감각 없이 보면 라마는 우스꽝스럽게도 흔히 볼 수 있는 보일러 통 같은 모습이었다. -p22

foundation3d포럼에 DELTA라는 user가 스캔해서 올린 동명게임 설정 원화

노턴선장을 필두로한 인데버호의 승무원들은 북반구에 있는(오른쪽) 입구를 통해 진입합니다. 알파, 베타, 감마라고 이름지어진 기다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만나는건 중앙평원. 타원형의 섬이 존재하고 있는곳은 라마의 바다이며 타원형의 섬은 ‘뉴욕’이라고 이름지어졌습니다. 라마의 바다와 닿아 있는 남반구의 시작에는 높은 방벽이 있기 때문에 제임스는 ‘잠자리’라고 불리는 비행체를 타고 넘어가 원뿔모양의 구조물까지 탐험하게 됩니다.

인데버호의 설계도. Monkey House가 중간에 보입니다.!!

지구의 도시명인 뉴욕, 런던등을 이름 붙여 구획을 구분한다는 개념은 독자로 하여금 지명에 친숙해지게 만드는 의도 이외에도 새로운 사물을 접할때 행동하는 인간의 패턴을 계속 암시하고 있는듯합니다. 최근 Arrival이라는 영화에서 인상깊었던 외계인과의 의사소통처럼(‘나는 루이스입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친숙한 프레임을 먼저 새로운 것에 적용하곤 합니다. 사실 인간이라는 것에서 벗어나 ‘학습’이라는 사고체계가 추론, 사실인식, 오류판단, 재인식등의 순서로 이루어 진다고 생각하면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이나 모습을 ‘새로운것’에 빗대는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인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지적 생명체가 있다면 당연히 그런 순서로 어떤것을 인식할것이라는 가정도 하게되구요. 그런 의미로 저한테는 ‘라마인과의 랑데부’가 SF세계와의 랑데부같은 작품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곳을 알고 있다. 전에 이곳에 와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인간 중 그 누구도 이곳을 접해 보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그리고 마침내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기억이 그를 구한 것이다. 놀라서 소용돌이치던 가슴이 차츰 가라앉고 대신 뚜렷하게 떠오르는 젊은 시절의 어떤 날이 그 자리를 메워갔다. -p103

 

transpine

생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생각하는 힘을 기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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